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하나님 (롬 9:12-13)

2023. 6. 20. 06:57카테고리 없음

1.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이 그럴 있는데요. 중에서도 논란이 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구절 하나가 로마서 9 13절입니다.

 

기록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구절입니다.  

 

구절이 논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하나님인 알았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미워하신다는 것이 충격이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시고 공평하지 않으신 분인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 구절만 봐도, 너희가 말하는 하나님은 불의를 행하시는 신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이를 반박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참으로 난감하고 논란이 되는 구절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지만, 구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첫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지 이유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닌데, 사람들은 보고 싶은 , 듣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유리한 , 자신이 원하는 것만 들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고 이를 종합해서 내린 결론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구절인데 다른 해석이 나오고,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무엇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  다른 해석과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거나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말하는 이유는,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에서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만 보기 때문입니다. 시선이 야곱을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에서를 미워하신다는 하나님께 맟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까요? 마디로 하나님이 싫어서 그렇습니다.

 

야곱이 누군지, 에서가 누군지, 하나님이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미워하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뿐입니다.  그러다가, 마침 구절을 보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을 것입니다.  

 

이것 봐라 하나님은 불의하시고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야곱이든 에서든 모두 사랑하셔야지, 그래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할까요? 결국 말을 하고 싶은 아닐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잘못되었고, 내가 하는 일은 옳다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시고, 나처럼 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항하는 이유입니다.

 

나는 공평하고 정의롭지만,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불의하시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있을까요?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을까요? 에서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 있을까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바울 사도가 인용한 오늘 본문의 구절은,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말라기 1장을 읽어보면, 오늘 본문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말라기 1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말라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말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자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속에 있었던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삶에 일어날 있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야곱을 사랑하셨을까요? 야곱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느냐?   야곱이 하나님께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였느냐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찾아서 읽어보면 사랑스럽지 않고 존경할만한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말년의 야곱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속이는 자였습니다. 형을 속였고 아버지를 속였고, 삼촌을 속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있는 그런 야비하고 연약한 사람이 야곱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야곱의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이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스럽지 않지만 사랑스럽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나서, 우리가 뛰어나서, 우리가 열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열심으로 봉사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아무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약해서, 연약해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매일 들어야 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운데 고난의 문제가 있을 , 핍박이 있을 환난이 있을 ,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로마서 8 35절은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없다고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 38-39절은 더욱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나라가 망하고, 포로 신세가 되고, 하는 일마다 안되고, 힘든 일이 우리를 옥죄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 모두가 끊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어느 누구도 끊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역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들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운데 있어도, 그래서 여러분이 형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여러분이 말로 없는 고난 중에 있어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셨다는 구절이,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있는 많은 질문의 대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8:28)’

 

누구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고난이나 핍박이나 환난이나 질병이나 미움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무엇이든지, 무슨 뜻일까요? 도저히 우리가 이해할 없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3.

원유경 목사님의 여섯 발걸음이라는 책을 보면, 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사랑과 두려움, 삶과 죽음이 쌍이었다라고 글을 시작합니다. 이유가 그의 어머니가 발작성 빈맥과 부정맥으로 병약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정맥이 시작되면 목사님의 어머니는 심각한 탈진과 공항 상태에 빠지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미니를 접하면서 그는 밤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게 너무나도 공포였고 사랑의 몫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꼬마 아이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다신 그럴게요.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제가 잘할게요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얼 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십대가 되어서도 밤에 불을 끄고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가 고등학교 2학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동생의 권유로 경배와 찬양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련회 예배를 참석하기 전의 모습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련회 참석 : ‘당시 나는 거부할 없는 동생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참석을 결정했다. 출발 당일 수련회장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내내 나는 충만한 헌신자들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대중 가수의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창밖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신경했다..’’

 

수련회 참석 : ‘ 이후 나는 이상 다른 노래를 찾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시작이었다. 완전히 다른 삶의 시작,..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사고 회로가 잠시 혼란을 겪는 . ..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본능적으로 멈췄다.. 분의 영광 앞에 섰을 비로서 제대로 숨을 쉬는 했다

 

그의 어릴 삶은 비극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의 삶이 새롭게 해석이 되고 있음을 읽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처럼, 그의 삶의 비극과 고난과 어려움들이 주님의 임재 가운데 새롭게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책에 소개된 이야기 중에, 중국에서 만나 무슬림을 전도하게 되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중국에서3개월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어는 서툴렀지만 현지인 친구들을 사귀어 집으로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주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노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기회조차 찾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에게 이런 비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1 명의 무슬림 회심자, 1명의 세례자’. 무슬림에게 전도하는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선교사님이 10 동안 수고해도 믿는 사람이 명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명의 무슬림 회심자라는 비전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소명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무슬림 개종 간증서를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증서에 많은 무슬림 개종자가 회심하는 결정적 사건이 있기 ,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 다수가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보기도의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팀원들과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과 정보를 붙여 놓고, 매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미나 라는 무슬림 자매하고 식사를 하다가,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분위기는 복음을 전할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결국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안에 계셔 처음부터 삶은 주의 손에 있었죠’..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이 주체할 없을만큼 쏟아졌는데, 동시에 무슬림 자매인 미나도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찬양을 들었다고 합니다. 미나 자매는 이유는 없지만 평안함이 자신을 덮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미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겠니?’ 그러자 미나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10년이상 죽음의 공포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하루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여러번 경험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완전히 억누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대답하는 순간 말할 없는 기쁨과 자유가 찾아왔노다고 눈물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미나는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는데, 10 만에 처음으로 수면제 없이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미나 자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지난 10 동안의 고난과 슬픔과 괴로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자유함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가운데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셨지만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구절에서 가장 충격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에서입니다. 에서가 구절을 들었다면, ‘하나님 그러실 있어야 저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나요?’ 라고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에서가 이렇게 따지려면, 사실은 에서가 해야 하는 생각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중요하신 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없다는 생각,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안된다는 생각, 하나님에게 기어코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에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말라기 1 4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에돔(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것이며’.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든지 미움을 받든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노여워하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사람이 에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말씀이 은혜로, 감사로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이고, 영광이며, 찬송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에게는 아무런 영감도 주지 못하는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에게 오늘 본문이 감동이고 은혜이고, 영광이고, 감사로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든 미워하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처럼 사랑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 주세요. 대신 우리는 에서처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에서처럼 행동해도, 야곱처럼 사랑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롭게 해석됩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