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롬 15:14-16)

2023. 7. 5. 06:34카테고리 없음

1

바울이 로마 교회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가 로마서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째서 로마에 편지를 것일까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 일까요?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이런 궁금증이 생길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줄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게 배경은 14절에서 찾아볼 있습니다.

형제들아.. ‘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 교회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자료를 찾아보면 바울은 로마에 교회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오순절에 로마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성령 체험을 받았고,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향해, ‘ 형제들아라고 담대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말할 있을까요? 바울이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만나 적도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있을까요? 그것은 그가 기도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있는 교회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는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형제들아라고 부를 있는 사람들이 있으시지요? 다른 말로,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없으시다면, 여러분에게도 도전을 드리고 싶습니다.

 

형제들아라고 부를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언제요? 토요일 아침이 그런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일주일에 이라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는 분들을 위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합니다. 분들이 여러분의 형제들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이 나의 형제들이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생긴다는 것입니다.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범사에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뜻이 됩니다. 일을 위해 우리가 훈련되었으면 합니다.

 

2.

그리고 우리는 바울이 사랑하는 로마 교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알게 됩니다. 14절에 보면,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내가 확신하노라

 

로마 교인들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선함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로마 교인들이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없이도 있는 사람들이 입니다. 여기에 가지 하자면, ‘모든 지식이 사람들입니다 이상 배울 없는 사람들이라는 아닌가요? 착함도 넘쳐 나고 지식도 넘쳐 나는 멋진 사람들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었습니다.

 

잡을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거짓됨이 없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가 로마서라는 것을 있습니다.  누구를 보는 같지요? ㅎㅎ

 

우리 공동체도 이런 확신이 들게 되었으면 합니다.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가득한 공동체. 그래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가 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낸 로마에 있는 형제들의 정체 때문입니다.그렇게 착하고 그렇게 아는 많은데, 나무랠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편지를 이유가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14절에 의하면, 로마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배울 없는 사람들이므로, 사람들을 상대로 바울은 아는 이야기를 썼다는 말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울 없는 지식. 뻔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로마서에 나오는 내용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15절에 보다 자세하게 편지를 쓰게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러나무슨 말인가요? 배울 없지만, 다는 것입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없는 같지만 쓴다는 것입니다. 왜요? 이유가 다음에 나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바울이 편지를 목적은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이었습니다. 무엇을 생각나게 하려고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칭의가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엇인지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는 내용인데, 다시 이야기 하려는 의도가 뭘까요?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봐야 부분입니다.

 

대학 시절에 받았던 신앙 훈련이 있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수련회에 가면 반복해서 하던 훈련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영리에 나오는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아는 내용이고 십번 들었던 내용이었습니다. 십번 말했던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수련회 때마다 반복하니 지겨울 만도 내용일 있습니다. 대학생 정도라면 금방 익힐 있고 깨달을 있는 그런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분는 아는 내용을 가르치다가 울기도 했습니다. 아는 내용인데, 배우다가 우는 사람도 봤습니다. 반면 어떤 분은 기쁨에 가득차서 얼굴이 처럼 밝아지기도 합니다. 아는 내용인데, 십번 들은 내용인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시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생각나서 그러신 것입니다. 사실 설교 시간에 하는 이야기도 아시는 내용이십니다. 30 설교 들었으면 아는 이야기입니다. 50 설교 들었으면 그게 내용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마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의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은, 알아도 새롭게 다가올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입니다.

 

아는 내용이지만 새롭게 해석되기를. 아는 내용이지만 정확히 알게 되기를. 아는 내용 같지만 깊이가 달라지기를. 아는 내용 같지만 넓이가 달라지고 높이도 달라지기를. 헌신의 정도가 달라지고, 믿음의 정도도 달라지기를 바란 것입니다.

 

 어떤 이는 같은 말씀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아는 내용지만 다르게 들렸고 마음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뻔한 이야기인데 감동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뻔한 내용인데 삶이 바꾸어 놓는 능력이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아는 같지만 다시 생각나면 다르게 들릴 있다는 것입니다. 뻔한 내용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새롭게 다가올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사도 바울은 확신했고, 그래서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담대함으로 편지를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복음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들 아니라,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들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사람도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아는 내용이지만, 새롭게 들리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이게 것은 하나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려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우리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삶의 무게가 너무 커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사랑, 성경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반복해서 들려지는 메시지, 메시지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다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응원하시고 게시다는 것을. 천군 천사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다시 생각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7월부터 시작된 제자 훈련이 의미가 있습니다. 아는 내용을 배우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속성, 성경, 기도, 교제, 전도, 성령 충만한 , 시험을 이기는 , 순종하는 , 사역하는 . .. “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렇게 말씀드릴 있습니다. ‘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렇지만, 우리가 제자 훈련을 하는 것은,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성령은 누구신지. 성령 충만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시기 적절한 말씀과 방향이 필요합니다.

 

기도하기는 제자 훈련에 나오는 것들이 아는 내용이지만, 전혀 다른 내용으로 들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차원의 말씀이 차원으로, 차원이 삼차원으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기를 기대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있으면, 할수만 있으면, 주일 아침 10시에 있는 제자훈련과 평상시에 있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일이 우리를 준비 시킬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것입니다.

 

3.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이런 열심과 담대함으로 편지를 쓰게 배경으로 은혜라는 단어를 소개합니다 16절입니다. ‘ 은혜는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하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임무를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고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했던 이유가 사명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부르심에 바울은 열심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렸던 원유경 목사님 여섯 걸음이라는 책에 보면, 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가 나옵니다. 분의 이모 할머니라고 하시는 분이 기도해 주시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경이 인생에는 사명이 있는 같네.’ .. 그러자 유경이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정말요? 하나님이 제게 사명을 주셨대요? 정말요?”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낚아채며 하나님께서 인생에 특별한 사명을 주셨는지 거듭 확인했다. .

 

그리고 다음 반응이 뭔지 궁금하시지요? 어린 유경이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같았다. 나라는 사람에게 분의 위대한 뜻을 맡기신다는 자체가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어느 정도의 무게로 일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가슴이 복받쳤다신이 인간에게 뜻을 둔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놀라야 한다 영광스러운 앞에서 전율해야 한다. 소스라치게.

옆에 있던 동생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나를 쳐다 봤다. 나중에 들어보니 동생은 기쁨에 겨워하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간이 미쳤나..?’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바울의 모습도 이랬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처음에 바울은 놀라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날을 생각할 자신을 불러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다시 놀랐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감격하고, 나아가 그에게 주어진 생명을 온전히 드리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명자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보았으면 합니다.

 

천지의 주시고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미천한 인생에게 당신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 이것만으로 가슴 터질 듯이 벅차 오르는 일이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감격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 믿는 주의 제자들은 모두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28:18-20)’

 

4.

우리에게는 사명 있습니다. 어떤 분은 위대한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는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시간이 주일 아침에, 그리고 우리의 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 양육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아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내용들을 반복하려는 이유는, 우리 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있을 같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 이유는 연습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노래도, 불러 보면 다릅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해도.. 그렇게 십번 백번 불러야 깊이와 맛을 있게 되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노래지만, 우리 몸에 익숙해 때까지 보려고 합니다. 우리 삶이 변할 때까지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을 거의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던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16:24)’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자기 집과 직업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지금처럼 따르는 것과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주님을 따르는 것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에 주님을 따르는 것은 하늘과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부인이라고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 내면에서 거듭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복해서 들어야 다시 생각나고 자기 부인을 하고, 그래야 주님을 따를 있습니다.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 보시길 바랍니다.

 

운동을 잘하는 방법은 반복입니다. 공부를 하는 방법, 반복입니다. 몸에 익힐 때까지 계속해 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모든 선함이 몸에 배어 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식이 우리 몸에 배어 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14:26)’

 

성령은 우리로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 생각 중에 하나님이 떠오르게 하시는 생각이 있습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십니다.

 

어떤 분의 설교에서 질문입니다. “목회가 필요한가? 성경 공부가 필요한가? 우리가 때로 간증을 하고 간증을 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질문의 대답은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무엇이 다시 생각날까요?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돌보심이 다시 생각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입을 빌리면 우리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게 하여, 하나님으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이런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