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싹 난 지팡이 (민 17:8-11)

2023. 4. 28. 10:46민수기

1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뜻 깊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더니 열매가 맺힌 사건이 그것입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팡이는 죽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싹이 나거나 꽃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죽은 나무이기에 열매 맺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애정을 쏟아 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죽은 나무에게서 싹이 나고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어날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언가 보여 주시고자 했습니다. 또한 우리도 오늘 그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나무를 살리시고, 싹이 나게 하실 아니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뼈 환상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뼈로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뼈들이 있겠느냐?’ 그래서 에스겔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 여호와여, 주께서만 아십니다그러자 주의 성령이 뼈 들에게 이렇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불어 넣겠다.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 37:1-5)’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나는 새도 하나님이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며,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일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천년 동안 생명의 신비를 알고 싶어 했지만, 아직도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생명이심을 부정하고, 엉뚱한 곳에서 대답을 찾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살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죽은 나무도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나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싹이 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분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오늘 본문인 거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소망이 없을 , 죽은 같이 되었을 ,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연해 보이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느냐 라고 다시 반문해 보려고 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놀라기만 하고 있나요? 아니면 아무 관심도 없으신가요? 

 

아론의 지팡이를 보십시오. 하나님만이 하실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죽은 나무가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생기가 있게 것입니다. 꽃이 것입니다.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능력자 이시고,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일은 여러 날이 흘러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루도 안돼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도 같은 맥락입니다. 포도나무가 물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통해 포도 열매를 맺고, 수확된 열매가 발효되는 과정을 거쳐야 포도주가 있습니다. 과정을 전부 뛰어 넘어야 가능한 일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하나님되심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 되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런데 민수기를 읽으시면서 발견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여주셨는지 모릅니다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고, 회중에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자꾸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우리에게도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능력의 하나님.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것입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레위 자손인 고라가 아론만 제사장을 한다는 것에 불만을 느낀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원망이 퍼져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고라와 다단을 포함한 250명이 죽었습니다. 또한 이에 동조한 14,700명이 생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슬픔과 두려움이 엄습했을 지 짐작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인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것은 비극의 역사로 인해 생긴 일입니다. 그리고 비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죽음을 겪게 것은 모세의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교만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무리가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 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 16:8-11)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진노 중이라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엄하기만 하신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욥기 5 17,1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 너는 전능자의경책을 업신여기지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손으로 고치시나니..’

 

호세아 6:1에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리라 했습니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타난 증거입니다. 10절을 보면,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생명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의 죄악을 방지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론의 지팡이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 대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우리가 깨달았으면 합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이 생기셨는지 모르겠습니다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살구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사과 일수도 있고, 복숭아일 수도 있고, 일수도 있을 텐데, 하필 살구 열매를 맺었을까요? 그것도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서 말입니다물론 질문의 대답은 아주 간단할 있습니다. 지팡이가 살구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지나가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법도 합니다. 예전에 류모세 선교사의 책에서 부분을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먼저 살구는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합니다. 살구로 변역된 식물은 실제로는 아몬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서 아몬드의 싹이 나고, 아몬드 꽃이 피게 하시고, 아몬드 열매를 맺게 하셨다는 것을 있습니다그렇다면, 하필 아몬드 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히브리어로 샤케드라고 하는 아몬드가 가진 때문입니다. 샤케드는 흔들어 깨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몬드가 흔들어 깨운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것은, 아몬드가 겨울을 보내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기나긴 겨울 잠을 깨우고 봄이 되었음을 알린다는 의미는, 영적인 각성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신 차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라고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경성한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는 구절들이 있는데, 단어들이 아몬드의 히브리어 샤케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편 127:1)’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 19:25)’

 

잠자는 자를 흔들어 깨우고, 거만한 자를 흔들어 깨워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26:40-41)’

 

아론의 지팡이에 아몬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정신 차리라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백성들을 깨우는 역할이 제사장의 역할인 것입니다. 나아가 선지자들의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영적 각성이 필요할 , 그들을 아론의 지팡이처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태평한 시기에 위기를 외쳤습니다. 모두들 형식에 만족하며 신앙생활 때에 그처럼 소중히 여기는 형식과 제도 속에 생명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으로 여호와를 향한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현대의 시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적용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보거든,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누가? 목사가!

누가? 장로가!

누가? 집사가!

누가? 내가!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은, 누구 탓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 있어야할 사람은 베드로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인 것입니다.

 

흔들어 깨우시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몬드 가지를 보여주신 것은, 어쩌면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추운 겨울이 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둘째는 그러나 겨울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따뜻한 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겨울을 준비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기 때문입니다.

 

아몬드 꽃을 보거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 대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것은 그러므로, 영적인 각성입니다

 

아론의 지팡이를 보여주셨습니다.

고라와 다단은 어쩌면 제사장의 화려함과 권위에 매료 되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잠자는 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떨까요?

우리 공동체는 영적으로 깨어 있을까요? 아니면 잠을 자고 있을까요?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릴 있습니다.

 

겨울이 시작되어도, 반드시 봄은 옵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 시대의 가난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도록 간구해야 때입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높아서는 됩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는 하는 순간, 어쩌면 깊은 잠에 빠져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정책들이 인기를 누립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는 전혀 다른 것들에 권위가 부여됩니다이것이 바로, 미국이 영적으로 잠 들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고라와 다단이 저질렀던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보거든,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여지게 하옵소서.

 

이렇게 주님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