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락과 발람을 통해 배우는 기도 (민수기 22:31-33)

2023. 5. 10. 13:43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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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한국 의정부 광명 교회 성도들이 저희와 함께 예배 드립니다. 귀한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곳까지 오셔서 기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분이 광명 교회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광명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말 속에 담겨 있는 자부심, 자신감 같은 느껴졌습니다. 또한 광명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같았습니다. 믿기로는 이곳 멤피스에 오시기 전부터 열심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멤피스에 오셔서, 전심으로 미국과 멤피스 땅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주님도 여러분의 기도를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 곳에 오셔서 주님이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고 알게 하시고 말씀해 주신 것들이 있으실 겁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의정부 광명 교회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일에 멤피스 한인교회도 주님께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땅의 모든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성전된 우리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기도하는 집으로 우리 모두가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지난 주 목요일, 국가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쉘비팜에서 열린 기도회는 예상보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6시간 동안 이어진 경배와 찬양, 기도의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들의 기도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의 백성들과 민족들이 여러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찬양하는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 국가를 위한 기도회는 끝났지만, 지속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복음 전파를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기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던 주에, 우리 모두는 민수기 21장에서 23 내용을 묵상했습니다.

 

민수기에서 상당히 분량의 내용이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비교적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도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기도 생활과 기도의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매일 성경 큐티 책에 설명 부분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기도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까요? 매우 철학적이면서도 매우 실질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가 하는 질문에, 우리는 다양하게 대답할 있을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으며, 우리를 지으셨다는것을 믿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목적을 주시는 하나님, 또한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심발라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적 원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간절히 기도한 후에야 비로서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신다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하나님은 기도가 아니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담대히 선언했습니다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 역사합니다.

 

‘..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고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 29:10-14)’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중에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주의 백성들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기도는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핍이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박이 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기도를 통해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배고파도 기도하고, 목말라도기도하고, 아파도 기도하고, 놀라도 기도하고, 두려워도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해서 기도하고, 감격해서 기도하고, 지혜가 부족해서 기도하고, 길이 막혀서 기도하고, 길을 잃어서 기도하고, 전쟁 중에 기도하고, 평안 중에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2.

오늘 본문에는 발람과 나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흔히 언어에서 찾습니다. 사람은 말을 하지만, 동물을 말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동물들도 말은 하거나, 사람처럼 흉내 있지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사람은 기도하지만, 동물은 기도할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있는 인간만이 영적인 존재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당혹스러운 부분이 나옵니다. 공상 소설책에서나 등장할만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충격적인 이유는, 전혀 영적이지 않은 나귀와 매우 영적인 발람의 역할이 바뀐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영적이지 않은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지만, 매우 영적인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성경에 소개된 매우 특이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발락이라는 인물입니다.

 

발락은 모압 왕 입니다. 그런데 모압 민족 가운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2 3절을 읽어보면, 모압이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있습니다.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그러면서 모압 발락이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뜯어 먹으리로다’

 

무슨 말인가요? 국가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압 왕이 고민하고 있고, 나아가 근심이 두려움으로 변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모압 군대는 이스라엘과 싸우기 전에 이미 사기가 떨어져 버렸다는 것도 말해 줍니다.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압 왕은 일을 영적인 싸움으로 판단했던 같습니다. 왜냐하면, 발락은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서 도움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청한 도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부탁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압 왕에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은 어려움에 닥치자 기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기도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교도지만, 기도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이렇게 요청한 배경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내가 앎이니라

 

발락이 이렇게 말하는 배경에는, 발람이 매우 영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압 왕은, 자신이 연약해도 발람이 기도해 주면,  이길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압왕이 가진 믿음이 대단합니다. 이런 발락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발락은 번이나 발람에게 같은 기도제목을 전달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라 것과 때문에 자신이 승리할 있게 달라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백성들도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발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있습니다. 발람이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있습니다. 그래서 모압 땅에서, 발람은 매우 영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발람이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들이 민수기에 등장합니다.

 

발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라는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과 대화할 있는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현대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영빨이장난이 아닌 사람 발람인 것입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 줄을 내가 앎이니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시지 않으세요? 발락과 발람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발락과 같이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 될 때까지 기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기도해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뭘까요?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어코 하라고 하실 때까지,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주장을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헌금을 낼테니 원하는 일이 일어나게 달라고 합니다. 산에서 들에게 광야에서 특별한 장소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주실 같습니다. 그러나,  발락의 요청은 누구에게 기도해도 상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자기가 원하는대로 기도 응답이 안되면, 부처님께 갑니다. 부처도 들어 주면, 하늘에도 기도하고, 나무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이유와 목적이,  자기의 뜻과 자기의 욕심을 이루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지 살펴보아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람은 어떤 인물일까요? 발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은, 사람들이 보기에 신기할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그가 저주하면 저주를 받았고, 그가 축복하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말에 권능이 생기지 않을 없습니다. 어쩌면 현대의 크리스천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를 하기만 하면 응답되더라~ 소문이 퍼지고, 발람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듭니다.신통하다, 영성이 높다이런 평가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도 문제가 생기면 발람 에게 달려 갑니다.

 

그런데 발람도 발락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발락의 요청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발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합니다.

 

첫 번째발락이 요청했을 ,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 22:12)’

 

그런데 두번째 발락의 요청했을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사람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나님이 발람에게 가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함께 가지 말라고 하셨고, 번째는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발람은 첫번째 말씀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말씀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압 왕이 보낸 사자를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민수기 22 22절에,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표면적으로는 발람은 잘못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발람에게 진노하시고 그를 막아섰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을까,  내막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발람은 발락이 번째 요청을 하면서 높은 고관들을 보냈습니다. 이때발람이 마음이 흔들렸던 같습니다. 원래 발람은 발락이 두번째로 보낸 사신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으니 나는 가지 않겠다 말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이제 너희도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이 발락의 사신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하는 마음이 발람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발람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신 것이냐면, ‘ 마음대로 하라 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마음대로 라고 말하면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발람은 좋아라 하면서, 어떤 고민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시행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고민은 어떤 고민일까요? 발람은 하나님이 처음과 다르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런 발람의 모습은 발락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끈질기게 요청하는 발락이나, 나은 조건이 제시되자, 마음이 흔들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자, 고민도 없이 달려가는 발람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리만 듣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가, 인간의 연약함이, 인간의 악함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발람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3.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할까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뜻을 관철하기 위함이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기도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기도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발락과 발람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발람을 통해 배워야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발람이 말한대로 모든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지금의 언어로 바꿔 보면, 기도 응답 받았다고 말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것이 있습니다. 발람이 기도해서 기도가 응답된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도하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걸까요?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복을 받고, 우리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발람이 영성이 뛰어나서,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소위 말하는 영빨이 좋아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가 오래 기도하고, 열심히기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 사람은 기도 안해서 저렇게 된거야. 인생이 제대로 꼬인 것은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거야’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도 많이 하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삼일 교회 송태근 목사님은 이런 태도를 율법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열심이나 우리의 영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인자하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 할 수록 항상 겸손해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도 부탁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발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한다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모든 것을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람은 나귀도 보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조심해야 부분이 있다는 아닐까요?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면, 깨어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밝혀 주셔야 보이는 세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31)’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것입니다. 주여 우리의 눈을 밝히사, 우리가 봐야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주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